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가 5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는 『검은 꽃』 『퀴즈쇼』를 잇는 ‘고아 트릴로지’의 마지막 작품이다. 스스로 우울 속으로 걸어들어가서 쓴 고아들의 이야기, 커튼을 내린 방안에서 녹음된 빗소리를 들으며 골방에서 써내려간 이야기이다. 그래서일까?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기저에는 슬픔의 덩어리가 몸을 낮추고 한껏 웅크리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독자가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갈 때마다 아주 조금씩 몸을 일으키면서 실체를 드러내고 어느 순간 독자를 슬픔으로 물들인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 슬픔과 한 덩어리가 되고 만다. 눈물 흘리는 장면 하나 없이 이루어내는 슬픔의 미학, 이것을 김영하식 슬픔이라고 부를 수밖에는 없겠다.
제이와 동규 이 두 명의 고아, 그리고 그들이 야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 고아들에 관한 이야기다. 동규가 제이의 흔적을 이어붙여서 한 편의 이야기로 만들어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제이의 분노와 동규의 비애, 그리고 고아들의 폭력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버려진 자들의 슬픔에서 비롯된 삶의 방식임을 알게 된다.
등단 17년, 김영하는 17세 고아 소년의 삶과 죽음을 다루면서 자신의 소설 세계의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세련된 형식적 완결성을 택하는 대신 제이와 스치고 제이에게 들린 인물들의 시점으로 구성된 이야기를 나란히 연결해놓음으로써 목소리들이 서로 울리도록 만들어놓았다. 마치 마주 세워놓은 거울처럼, 그들의 이야기는 내부에서 자꾸 증폭되면서 독자들을 혼란시킨다. 독자는 의문에 사로잡힌 채 끊임없이 묻게 될 것이다. 제이는 과연 무엇이었는가? 어찌하여 인물들의 고백은 제이를 더욱더 비밀스럽게 만드는가?
책은 세상에 손이 닿는 곳마다 아픈 까닭은 바로 자신이 아프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스스로 햇빛을 가리고 빗속으로 걸어들어간, 작가가 우리에게 속삭인다. 우리 존재가 바로 고아와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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