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정보
책소개
사마천이 남긴 역사 고전 『사기(史記)』는 중국 고대의 황제(黃帝)에서 시작하여 하(夏)·은(殷)·주(周)의 3대와 진(秦)·한(漢)의 사적을
기록한 〈본기(本紀)〉 12권과 일종의 연표라 할 수 있는 〈표(表)〉 10권, 국가의 제도와 문물에 관해 기록한 〈서(書)〉 8권, 제왕과 제후들
의 흥망성쇠를 적은 〈세가(世家)〉 30권, 그리고 그 당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천하에 이름을 떨친 인물들의 행적을 그린 〈열전(列傳)〉 70
권―도합 130권 52만6천5백 자로 구성되어 있는 방대한 역사서이다. 그 중에서도 〈본기〉는 사마천의 사관으로서의 뛰어난 역량이 두드러지
게 나타나는 백미로 꼽힌다.
이 책은 『사기』의 〈본기〉를 본격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열전〉에서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함 대
신 뚜렷한 사관에 입각해 엄정하게 써내려간 〈본기〉는 역사의 엄중함을 다시 일깨워준다. 역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현재를 비추는 거울
이며 미래를 제시해주는 나침반이기에, 시대가 혼란할수록 뛰어난 역사서는 그 빛을 발한다는 사실을 『사기 본기』를 통해 깨달을 수 있을 것
이다.
저자소개
한나라 전성기인 한 무제 때 활동한 역사학자이자 문학자로, 기원전 145년경 오늘날의 중국 섬서성 한성시의 고문촌 용문채에서 태어났다. 황
제 측근에서 각종 기록을 담당하던 아버지 사마담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학문에 정진했다.
20세를 전후해서는 당대 최고의 학
자인 공안국과 동중서를 만났는데, 이는 그의 학문적 여정에서 큰 이정표가 되었다. 특히 동중서를 통해서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본질
적 물음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역사 유적지를 찾아 자유롭게 천하를 방랑했는데, 이는 훗날 『사기』 저술의 자양분이
되었다.
그 후 그는 황제의 경호원 격인 낭중이라는 직책에 임명되었지만 그의 나이 36세 때 사마담이 낙양에서 화병으로 죽으면
서 남긴 유언을 계기로 새로운 삶의 목표를 갖게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다하지 못한 대역사서를 완성하는 일이었다. 3년 후 사관직인 태사
령에 오른 그는 B.C. 99년 이능의 투항 사건을 맞아 홀로 이능 장군을 변호하다가 사형을 선고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 47살이었다. 당시 사
형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돈 오십만 냥으로 감형 받는 것과 궁형을 받아 환관이 되는 것이었다. 죽음과 삶의 기로에서 사마천은 부친의 유언을
따르고 다 이루지 못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궁형을 자청하여 환관이 되었다. 부형(腐刑)이라 불리는 궁형은 사람이 당하는 모욕 가운데 가장
심한 형벌이었다. 궁형의 치욕을 견디며 사기를 완성하여 후세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 치욕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발분하여 사
기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사기』는 왕도정치의 이상을 담은 공자의 『춘추』를 계승한 책이다.
그러나 곧 참혹한 화가 그
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릉의 화’가 그것이다. 이 사건은 사마천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출옥한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사마천이 아니
었다. 그는 자신의 울분을 누르고 천지자연의 이치와 인간 운명의 비극을 통찰함으로써 ‘역사를 재창조한 역사가’가 되었다.
목차
태사공(太史公) 자서
1. 오제본기(五帝本紀)
2. 하본기(夏本紀)
3. 은본기(殷本紀)
4. 주본기(周本紀)
5. 진본
기(秦本紀)
6.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7. 항우본기(項羽本紀)
8. 고조본기(高祖本紀)
9.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
10.
효문본기(孝文本紀)
11. 효경본기(孝景本紀)
12. 효무본기(孝武本紀)
사기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