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박사는 누구인가?
우리 시대 젊은 재담꾼 이기호의 세번째 소설집. 신작 『김 박사는 누구인가?』에는 제11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을 비롯한 여덟 편의 소설이 수록돼 있다. 이번 소설집은 작가가 기억과 기억 사이의 공백을 ‘이야기’로 보수해가면서 삶과 ‘이야기’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방식을 규명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색조를 유지하면서도 서사와 문장의 열기를 유연하게 다스린 점 또한 이전 소설집, 『최순덕 성령 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와 사뭇 달라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표제작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교원임용고시에 실패하고 점점 “쓸모없는 인간”이 되는 것 같아 두려운 화자가 김 박사라는 인물과 상담을 주고받으며 전개되는데, 끄트머리에서 느닷없이 작가의 목소리가 등장해 “이제 다들 아셨죠. 김 박사가 누구인지? 자, 그럼 어서 빈칸을 채워주세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책에도 반 페이지 가량의 여백(129쪽)을 두고 있다. 소설이 무슨 가구도 아니고, 독자(소비자)가 소설(제품)을 써야(만들어야)만 하는 이 상황이 그저 낯설기만 하다. 랩이나 성경의 문체, 최면의 화술 등 워낙 독특한 기법을 구사해온 작가이기에 이번 것도 새로운 시도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빈칸(공백, 여백)이 집요하게 시선을 붙들어 그냥 넘겨버리기가 쉽지 않다. 작품을 되짚어 읽으면서, 다른 작품을 읽다가도 문득 생각나서 자꾸 빈칸을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지만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라며 감히 독자를 질타하던 목소리(「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최순덕 성령 충만기』)가 환청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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