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모래의 시간은 늘 이별이야”
지배적 언어에 맞서는 몸의 언어로 한국 현대시의 미학을 갱신해온 ‘시인들의 시인’, 김혜순의 열네번째 시집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가 문학과지성 시인선 567으로 출간되었다.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에서 김혜순은 세상의 죽음을 탄식한다. 1부는 시인의 ‘엄마’가 아플 때와 돌아가신 후에 죽음을 맴돌며 적은 비탄의 시들이다. 2부에는 코로나19라는 전 인류적 재난을 맞이한 시대적 절망이, 3부에는 죽음의 바깥에서 텅 빈 사막을 헤맨 기록이 담겼다. 시인은 사적으로 경험한 병과 죽음을 투과하여 세상의 죽음을, 그 낱낱의 죽음에 숨겨진 비탄 하나하나를 바라본다. 비탄의 연대를 도모하면서 모래처럼 부서진 생명의 조각들이 죽음 그 자체인 망각의 사막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온 힘을 다해 지켜본다. 그렇게 죽음이란 ‘삶 속에서 무한히 겪어나가야 하며 무한히 물리쳐야 하는 것, 살면서 앓는 것’임을 김혜순의 시를 통해 우리는 마침내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저자소개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김혜순이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선험적 죽음이다. 그의 세 번째 시집 제목이 『어느 별의 지옥』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어느 별의 죽음』은 세계의 무목적성에 대한 오랜 응시로 삶에 예정되어 있는 불행을 눈치채버린 이의, 삶의 텅 빔과 헛됨, 견딜 수 없는 지옥의 느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비관주의적 상상력이 빚어낸 시집이다. 그의 시 세계는 일상적이고 자명한 것의 평화와 질서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의식을 난폭하게 찌르고 괴롭힌다.
김혜순은 1955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다. 초등 학교에 입학할 무렵 강원도 원주에 이사해 거기서 청소년기를 보낸 그는 원주여고를 거쳐 1973년 건국대학교 국문과에 들어가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78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처음 써 본 평론 「시와 회화의 미학적 교류」가 입선하고, 이어 1979년 「문학과 지성」에 「담배를 피우는 시인」,「도솔가」등의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대학 졸업 뒤 「평민사」와 「문장」의 편집부에서 일하던 그는 1993년 「김수영 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그는 1998년 '김수영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낯설고 이색적이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던 그의 시세계는 비로소 문단의 공인을 받는다. 2019년 캐나다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를 수상했다.
김혜순 시의 착지점은 '몸', 그것도 해탈이 불가능한 '여성의 몸'이다. 해탈이 불가능한 몸에서 출발한 그의 시적 상상력은 때때로 그로테스크한 식육적 상상력으로까지 뻗친다. 이런 점에서 김혜순의 시를 "블랙유머에 바탕을 둔 경쾌한 악마주의"의 시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기 시의 발생론적 근거를 '여성'과 '여성의 몸'에서 찾는다. 이에 대해 그는 "식민지에 사는 사람은 절대 해탈이 불가능하다. 여성은 식민지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회학적 요인이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식민지성이 있다. 이때의 여성은 인식론적 여성이 아니라 존재론적 여성이다."라고 말한다.
목차
시인의 말
1부 지구가 죽으면
춤이란 춤
엄마 on 엄마 off
모음의 이중생활
죽으면 미치게 되는 건가
아파의 가계
흑마의 검은 얼굴
더러운 흼
체세포복제배아
엄마가 내 귓속에서 기침을 하는 엄마
백설 할머니 특공대
잊힌 비행기
인생의 마지막 필수 항목 세 가지
미지근한 입안에서
먼동이 튼다
검은 피아노의 사공
저 봄 잡아라
냉장고 호텔
흰머리 새타니
꼬꼬닭아 우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깰라
멍멍개야 우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깰라
빈집의 아보카도
엄마란 무엇인가
죽음의 베이비파우더
취한 물고기
민들레의 흰 머리칼
목젖과 클리토리스
죽음의 고아
거울이 없으면 감옥이 아니지
죽음의 유모
피카딜리 서커스
천 마리의 학이 날아올라
엄마는 나의 프랑켄슈타인
불면의 망원경
나는 엄마의 개명 소식을 들었다
2부 봉쇄
셧다운
죽은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꽃
erotic zerotic
고니
종鐘 속에서
3부 달은 누굴 돌지?
형용사의 영지
시인의 장소
내세의 마이크
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와
너무조용해서위로조차할수없는육체를가진여자와
주파수가다른곳으로떠난여자의 기원막대나선공명
포츠다머 플라츠
서울식 우주
다쉬테 도서관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우주엄마와 우리엄마
Yellowsand
Blackletter
Whitebooks
*모래인
*시작
* 국가
* 피플
* 무한한 포옹
*언어
*눈동자
*몸과 몸
*경전
*모래증후군
*신기루
*별의 것
*결국
암탉의 소화기관
사막의 숙주
모래능
발
오아시스
사하라 오로라
아지랑이의 털
종 속 과 목 강 문 계 역
새는 왜 죽은 사람을 떠올리게 할까?
모래세안
모래화장
호스피스 정문에 과일이 왔어요 과일 소리치는 트럭이 도착하면
모래의 머리카락
진저리 치는 해변
눈물의 해변
불면증이라는 알몸
지하철 쇠 의자에 온기를 남기고 일어설 때, 나는 왜 부끄럽지?
해설
모래바람·박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