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후에 알게되는 것들
지긋지긋한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준비 없이 떠났다. 하얀 종이에 ‘일신상의 이유’라고 작성하기가 이렇게 어려웠었나. 너무 익숙해서 몸서리치게 지겨웠던 일상. 그런데 낯선 곳에서 익숙한 행동을 하고 있다. 이미 나는 나라는 존재에 익숙해져 있음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서둘러 떠났던 이유는 지긋지긋해서가 아니라 낯선 것이 그리워서였다. 낯선 삶이 그리워서였다. 낯섦에 집중하면 어느새 익숙해진다. 낯선 골목은 반나절만 지나면 이내 익숙해지지 않았던가. 낯선 곳에서 또다시 익숙해지기 위해 골목길을 익히고 동네 꼬마의 눈망울을 담아내고 있지 않았던가. 마치 여행자가 아닌 듯 시선을 고정시키고 싶지 않았던가. 낯설지만 익숙한, 익숙하지만 낯선 여행자의 삶이다. 낯선 길에서 익숙한 추억을 끄집어낸다. 낯선 길에서 익숙한 이름을 읊조린다. 익숙해진 길에서 낯선 사람과 만나고 낯선 사랑을 하고 어색한 이별을 한다. 낯선 여행길에서 낯선 나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꼭 낯선 여행길을 택하지 않아도 나는 나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지금 우리가 숨 쉬고 있는 이 좁은 공간속에서조차도.
40여 개국을 여행 다니며 저자가 느낀 일과 사랑에 관한 힐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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