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첫시집 [우울씨의 일일]과 두번째 시집 [자본주의의 약속]에서 시인은 자본주의 혹은 수직으로 세워진 문명에 대해 비판한다. 그리고 세번째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서 함민복은 문명비평가와 우울증을 떨쳐버리고, 슬쩍슬쩍 존재의 안쪽을 들여다본다. 세번째 시집 출간 후 시인은 강화도로 삶의 거처를 옮긴다. 아니 밀려간다. 여기서 시인은 문명도 존재의 의문을 이전처럼 되새김하지 않는다. 대문을 열면 눈앞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먼지도 일지 않는 바닷길, 거대한 수평선은 딱딱한 땅위에 수직의 길로 세워진 거만한 문명을 일순간에 지운다. 섬과 함께 섬처럼 떠 있는 시인의 마음도 섬으로 밀려오고 다시 밀려가는 바닷물의 흐름과 함께 가득 채워지고 또다시 비워진다.
저자소개
자본과 욕망의 시대에 저만치 동떨어져 살아가는 전업 시인. 개인의 소외와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특유의 감성적 문체로 써내려간 시로 호평받은 그는, 인간미와 진솔함이 살아 있는 에세이로도 널리 사랑 받고 있다.
1962년 충북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간 근무하다 서울예전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2학년 때인 1988년 『세계의 문학』에 「성선설」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1990년 첫 시집 『우울氏의 一日』을 펴냈다. 그의 시집 『우울氏의 一日』에서는 의사소통 부재의 현실에서 「잡념」 의 밀폐된 공간 속에 은거하고 있는 현대인의 소외된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1993년 발표한 『자본주의의 약속』에서는 자본주의의 물결 속에 소외되어 가는 개인의 모습을 통해 자본주의의 폭력성을 이야기 하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
서울 달동네와 친구 방을 전전하며 떠돌다 96년, 우연히 놀러 왔던 마니산이 너무 좋아 보증금 없이 월세 10 만원 짜리 폐가를 빌려 둥지를 틀었다는 그는 "방 두 개에 거실도 있고 텃밭도 있으니 나는 중산층"이라고 말한다. 그는 없는 게 많다.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다. 그런데도 그에게서 느껴지는 여유와 편안함이 있다. 한 기자가"가난에 대해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부스스한 머리칼에 구부정한 어깨를 가진 그는 부드럽지만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가난하다는 게 결국은 부족하다는 거고, 부족하다는 건 뭔가 원한다는 건데, 난 사실 원하는 게 별로 없어요. 혼자 사니까 별 필요한 것도 없고. 이 집도 언제 비워줘야 할지 모르지만 빈집이 수두룩한데 뭐. 자본주의적 삶이란 돈만큼 확장된다는 것을 처절하게 체험했지만 굳이, 확장 안 시켜도 된다고 생각해요. 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요."(동아일보 허문명 기자 기사 인용)
2005년 10년 만에 네번째 시집 『말랑말랑한 힘』을 출간하여 제24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 시집은 그의 강화도 생활의 온전한 시적 보고서인 셈이다. 함민복 시인은 이제 강화도 동막리 사람들과 한통속이다. 강화도 사람이 되어 지내는 동안 함민복의 시는 욕망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이리저리 부딪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강화도 개펄의 힘을 전해준다. 하지만 정작 시인은 지금도 조용히 마음의 길을 닦고 있다.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는 포털 사이트 Daum에 5개월간 연재한 글에다 틈틈이 지면에 발표했던 글들을 묶었다. 과거를 추억하나 그에 얽매이지 않고, 안빈낙도하는 듯하나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과 날선 눈초리를 잃지 않는 글들은 온라인에서 깊은 사랑을 받았다. 그 밖에 시집으로 『우울 씨의 일일』『자본주의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말랑말랑한 힘』,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가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을 수상하였다.
『미안한 마음』은 산골짝 출신인 함민복 시인이 10여 년 세월 강화도 갯바람을 맞으며 강화 사람들과 함께 부대껴 살며 보고 느낀 바를 표제처럼 정말 ‘미안한 마음’으로 담은 이야기다. 장가를 갔으면 싶은 노모의 모정을 읽을 수 있는 글, 때론 한 잔 술을 거절하고 파스 한 장 척 붙이고 ‘이제 안 아프다’ 위안하며 쓴 글 묶음이다. 그러하기에 함민복 시인의 문학적 모태가 되고 있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목차
1 길
나를 위로하며
감나무
호박
봄꽃
폐가
청둥오리
부부
그 샘
거미
보따리
초승달
최제우
옥탑방
귀향
폐타이어
식목일
백미러
길 위에서 깔려 죽은 뱀은 납작하다
길의 길
물
정수사
길
2 그림자
봄
환한 그림자
불타는 그림자
질긴 그림자
불 탄 산
고향
개밥그릇
뿌리의 힘
폐타이어 2
일식
그림자
사십 세가 되어 새를 보다
그늘 학습
원을 태우며
아, 구름 선생
달과 설중매
그리움
해바라기
논 속의 산그림자
3 죄
천둥소리
전구를 갈며
김포평야
검은 역삼각형
눈사람
여름의 가르침
소스라치다
감촉여행
그리운 나무 십자가
돌에 기호 108번
같은 자궁 속에 살면서
개 도살장에서
죄
큰물
4 뻘
섬
뻘에 말뚝 박는 법
뻘
숭어 한 지게 짊어지고
승리호의 봄
닻
주꾸미
푸르고 짠 길
물고기
동막리 가을
어민 후계자 함현수
분오리 저수지에서
개
낚시 이후
한밤의 덕적도
저 달장아찌 누가 박아 놓았나
물고기 2
뻘밭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산문 ㅣ 섬이 하나면 섬은 섬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