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법이 될 때
우리는 그 이름을 제대로 불러준 적 있을까
남궁인, 정혜윤, 김민섭 추천
‘장발장법’ 위헌 결정을 이끈 국선변호사가 써 내려간 르포르타주 에세이
고유명사로 태어나 비극적인 일로 죽거나 희생된 뒤 모두가 기억하는 보통명사가 된 사람들이 있다. 2018년 겨울 한국발전기술의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노동자가 기계에 몸이 끼여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산재가 분명했지만 법적으로는 원청을 처벌할 근거가 없었다. 하청 노동자가 죽거나 다치면 원청이 책임을 지라는 것, 그 당연한 말을 법에 새기기 위해 어머니는 아들 김용균의 이름을 기꺼이 세상에 내어줬다. 어떤 이름은 그처럼 위험에서 노동자를 지키는 법이 되기도, 장기 미제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구하는 법(태완이법)이 되기도, 어린이 같은 약자를 보호하는 법(민식이법)이 되기도 한다. 김용균, 태완이, 구하라, 민식이, 임세원, 사랑이, 김관홍……. 이 책은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우리의 태도를 바꾼 법이 된 사람들 일곱 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국선변호사가 되기 전, 10년차 베테랑 기자였던 저자는 평일엔 법정으로, 주말과 휴일엔 유가족 등을 취재하기 위해 전국을 다녔다. 평범한 이들이 법을 만들어내기까지, 그 지난한 시간을 증거로 남기는 것 이 우리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면서도 “이야기가 지닌 치명적인 위험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 잘못, 제대로 감시하지 않은 언론의 방관, 그리고 때론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던 여론의 태도까지 따끔하게 비판한다.
이름을 부르면 한국 사회의 불의가 메아리처럼 선명하게 되돌아왔다. 김용균법을 말하자 구의역 김 군이, 전태일 열사가, 흔한 성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일하다 죽은 수많은 무명들이 들렸고, 김관홍법을 말하자 세월호 참사라는 거대한 불법의 소리가 들렸다. 저자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을 만드는 것은 국회뿐 아니라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임을 강조하며, 우리가 이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뼈아프게 묻는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면 단 하나, 이름을 법에 내어준 이들의 말에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이 책을 읽나요?” 인터뷰가 끝날 무렵, 김미숙 씨가 물었다. 머뭇거리는 저자에게 그가 간절하게 덧붙였다. “우리 사회는 각자도생하니까 잘사는 사람만 잘살고, 가난이 대물림되고, 너무 사는 게 팍팍하고, 기댈 데가 없고…이런 무한 경쟁을 하지 않도록 학생들이 깨어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전한 사회, 사람 중심의 사회, 우리 학생들이 졸업하고 그런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49쪽) 이 책은 법이 된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유가족 등의 증언과 함께 써 내려간 르포르타주 에세이다. 이 긴 호명이 끝나면 우리는 남은 자들의 책임에 대해 답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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