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고려, 조선의 성곽에서 역사를 만나다
이 책은 2020년1월에 출판된 책의 개정판으로 고려, 조선시대에 걸쳐 세워진 성곽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어놓은 것입니다. 본 개정판은 첫 출판이 이루어진 뒤 그동안 변경되거나 부족했던 정보를 추가로 수록하고, 고려, 조선의 역사에서 비중 있게 등장하는 성곽 주제를 추가하여 총 60편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개정판인 만큼 본문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보완되었으며, 수록된 사진도 30여 장이 더 추가되어 총 380여 장에 이릅니다. 또한, 여기에 교보에서 칼라판의 도서 가격을 상당 부분 인하해 줌으로써 더 현실적인 가격으로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고대에 세워진 성곽이 주로 한반도 내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되었다면 고려, 조선시대 이후에는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는 성격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물론 이 시기에 세워진 성곽 중 상당수는 고대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이 땅에서는 수많은 전쟁이 일어났고, 시대에 따라 전쟁의 규모는 확대되어 갔습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는 지역이라면 어김없이 산성, 읍성이 들어설 만큼 수없이 많은 성곽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역할은 본격적으로 화포가 도입되는 조선 후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나라는 성곽의 나라로 불릴만합니다.
고대 삼국이 통일신라로 통합된 이후 잠시 후삼국 시대를 거치면서 한반도는 고려에 의해 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삼국시대와는 달리 고려시대 성곽은 주로 왜구와 북방민족, 특히 몽골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호란, 왜란과 같은 큰 전쟁을 겪으며, 성곽 또한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구한말 서구 열강과 맞서는 데도 성곽은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역할을 수행했던 성곽은 이제 귀중한 역사 문화유산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습니다.
웅장해 보이는 성곽 유적 속에는 건설에 동원된 수많은 사람의 희생과 이름 없이 사라져 간 민초들의 한과 슬픔이 들어있습니다. 피눈물 나는 전쟁의 참상, 패전의 쓰라림과 승전의 기쁨, 애틋한 사랑과 슬픈 이별과 같은 사연은 우리 역사로 남았고, 문학이 되었으며, 예술로 승화되기도 하였습니다. 그토록 많은 성곽만큼이나 이곳에 남겨진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성곽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대부분의 우리 역사가 성곽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옛 성곽 속에는 오랜 세월동안 베일에 싸인 역사의 비밀을 풀어줄 단서가 들어있습니다. 따라서 남아 있는 성곽의 자취는 사라져 버린 옛 기록의 단초를 찾거나 역사적 비밀을 밝히는 데 있어서도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곽에서 만나는 작은 돌멩이, 부서진 기왓장 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성곽을 찾는 여행은 누구나 쉽게 시작할 수 있으나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달아야 하는 까닭입니다. 또한 성곽은 지나버린 오랜 세월을 견뎌온 흔적이기에 이를 둘러싼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논란은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데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과정으로 생각됩니다.
본래 성곽은 전쟁과 같은 유사시를 대비해 만들어진 시설이므로 미관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존재입니다. 더욱이 이러한 시설이 만들어지던 시대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 같은 것을 고려하던 때도 아니었습니다. 많은 성곽이 아름다운 산천 주변에 입지하고 있는 이유가 풍경을 즐기라고 한 것이 아님은 누구나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절경을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산하에서 성곽 흔적은 어렵지 않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곽을 축조한 본래 목적과도 관계가 깊습니다. 성곽은 적의 침입이나 이동을 빨리 인지해야 하므로 주변보다 높은 곳에 세워져야 합니다. 또한 적이 쉽게 공격하지 못해야 하므로 자연적인 하천이나 절벽과 같은 지형지물을 활용할 수 있는 곳에 세워집니다. 이런 까닭에 성곽이 들어선 지역은 대부분 전망도 좋고, 아름다운 산과 하천으로 둘러싸여 있어 여행 명소가 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기 소개되고 있는 성곽은 저마다 시대를 달리하며, 다음과 같은 역사성을 가진 유적입니다. 몽골의 침략에 맞섰던 역사의 흔적,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가 오롯이 담겨있는 서울 도성과 주변 성곽, 임진왜란의 비극이 서려있는 성곽, 삼별초가 남긴 끈질긴 저항의 흔적, 왜구의 침략에 대비해 세워진 해안의 성곽, 구한말 외세에 저항했던 요새와 동학농민운동 전적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읍성이 바로 그곳입니다. 이 성곽 속에는 고려와 조선시대 역사의 많은 부분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곽 유적은 질과 양적인 측면 모두를 통틀어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어떠한 관광 자원보다도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역사 문화유산입니다. 또한 해외의 어떤 역사 여행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만한 조건을 갖춘 성곽 여행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 산하에 폭넓게 분포하고 있는 성곽을 더 많이 이해하고, 위기에 처한 성곽 유적에 대한 많은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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